다양성이 마블을 해치는 걸까?

마블 코믹스의 영업 및 마케팅 담당 수석 부사장인 데이빗 가브리엘(David Gabriel)은 ICv2.com과의 인터뷰에서 10월의 코믹스 판매량 부진에 대한 해석을 내놓았죠. 부진의 원인으로는 당시 공개된 타이틀이 지나치게 많았던 탓도 있지만, 독자들은 더 이상 여성 캐릭터를 원하지 않는다는 소매상들의 의견을 들었고, 그것이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부진한 판매량이 입증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여성 캐릭터 뿐 아니라 유색인종, 새로운 세대의 히어로 등 기존의 핵심 캐릭터가 아닌 이들이 등장하는 타이틀의 판매가 부진하다는 설명이었어요.

당연히 온라인의 반응은 들끓었고, 다음 날 가브리엘은 짧은 성명서를 통해 단지 핵심 캐릭터들 위주로 재편할 뿐 (판매량 부진에도 불구하고)새로운 히어로들을 없애지는 않을 것이라며 논란을 잠식시키려 애를 썼습니다. 편집장인 액슬 알론소(Axel Alonso) 역시, 소매상들의 의견에 따르면 독자들은 새로운 히어로들을 좋아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다양성 캐릭터들을 없애지 않을 거라고 진화에 나섰지요.

자, 그렇다면 다양성 캐릭터들로 인해 판매량이 부진하다는 이 주장이 사실인지 따져봐야겠습니다. CBR.com의 판매량 분석을 상당 부분 인용했습니다.

 davidgabriel이 사람이 바로 데이빗 가브리엘 씨

 

마블 코믹스는 <시크릿 워즈> 이후 전반적인 하락세가 왔습니다. 2015년 10월에 “올 뉴, 올 디퍼런트 마블 나우(All-New, All-Different Marvel Now)”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대부분의 시리즈가 새롭게 시작되었지만 작가진이 거의 바뀌지 않아 기존과의 차별성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많은 책이 심한 판매 부진을 겪었고, 특히 DC의 리버스(Rebirth)가 시작되면서 더욱 심해지고 말았습니다.

 

<시크릿 워즈> 이전에는 24개의 시리즈가 이슈 하나당 평균 38,521부가 도매상을 통해 팔렸는데, 최근엔 이 동일한 24개의 시리즈들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 22,972부에 불과했습니다. 또 당시부터 2017년 2월까지 마블이 출시한 연재물이 무려 104종이나 되며, 한 달에 평균 6종씩의 새로운 시리즈를 펴냈습니다. 10개의 이슈도 채우지 못하고 중단된 시리즈가 25개나 됩니다. 지금도 아슬아슬한 시리즈들이 몇 개 있고요.

2017년 2월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마이티 토르> 시리즈만이 4만부 이상 팔리며 최다판매량을 세우고 있을 뿐입니다(3월 판매량은 아직 나오지 않았음). 이 두 시리즈는 <시크릿 워즈> 이전까지만 해도 8만부 이상씩 팔리고 있었고, 판매량 상위 10종의 작품들은 모두 한 달에 5만부 이상씩 나가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양이 줄어들었네요.

 

그럼 가브리엘의 발언대로 히어로의 다양성이 판매량 부진의 원인 중 하나일까요?

상위권에 위치한 타이틀 중 제인 포스터의 <마이티 토르>, 리리 윌리엄스의 <인빈서블 아이언맨>, <블랙 팬서> 이렇게 세 작품만 다양성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머지는 남성 히어로나 팀 활동물이며, 대부분 백인 남성으로 이루어진 A급 작가진들이 만드는 시리즈입니다.

새 타이틀 중 <인빈서블 아이언맨>, <블랙 팬서>, <닥터 스트레인지> 등 몇몇 타이틀은 이전 시리즈보다 판매량이 더 뛰어나며, <마이티 토르>는 토르 오딘손이 나왔던 <토르: 갓 오브 썬더>보다 오히려 판매량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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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이후 출시된 모든 도서의 마지막 이슈 또는 가장 최근 이슈의 판매량을 밑에서부터 살펴봤습니다. 소매상에게 판매된 하위권 10종의 타이틀을 볼 때 평균 7천부 정도가 팔렸고 많이 팔린 것도 9천부를 넘지 못했습니다.
<솔로>, <스타브랜드 앤드 나이트마스크>, <레드 울프>, <하이페리온>, <드랙스>, <팻시 워커, A.K.A. 헬캣!>가 금세 캔슬되었고, <슬랩스틱>, <풀킬러>, <모자이크> 역시 캔슬 위기에 있습니다. <문걸 앤드 데블 다이노서>만이 도매상에게 8천부 넘게 팔렸습니다.

물론 이들 중 5개 타이틀은 다양성을 내세운 캐릭터들이지만, <레드 울프> 같은 타이틀은 캐릭터나 이야기 측면에서 너무 전형적인 아메리카 원주민 요소들로 비판을 받았으므로 단순히 유색인종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시크릿 워즈> 이후 출간된 다양성 캐릭터의 시리즈는 전체의 약 40% 정도인데, 이중에서도 약 38%가 캔슬되었습니다. 다양성 시리즈가 백인 남성 시리즈보다 약간 덜 팔린 것은 사실입니다. 2017년 2월에 모든 시리즈의 평균 판매량은 24,853부로, 다양성 시리즈만 놓고 보면 22,086부가 팔렸습니다. 평균보다 아래인 셈이죠.

그렇다고 이것이 여성이나 유색인종의 시리즈가 여성이나 유색인종의 타이틀이라서 덜 팔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이티 토르>는 현재 마블의 두 번째로 많이 팔리는 타이틀입니다.
<블랙 팬서>와 <인빈서블 아이언맨>은 상위 10위 안에 들어가며, 마일즈 모랄레스의 <스파이더맨>은 <시크릿 워즈> 이전보다 5천부 이상 더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올 뉴 울버린>, <스파이더 그웬>은 전체 평균 판매량을 훌쩍 뛰어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있으며, <미즈 마블>이랑 <언비터블 스쿼럴걸>은 이슈보다도 단행본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판매량을 분석해보면 다양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됩니다.

진짜 문제는 전형적인 마블의 A급 타이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크릿 워즈> 이후 어벤저스와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타이틀들의 판매량 감소와, 마블의 주소득원인 X-멘 타이틀들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그 피해가 커졌습니다.

<시크릿 워즈> 이후의 판매 부진 원인으로는 1)잘 팔리고 있는 타이틀을 괜히 이슈 1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2)끝없이 이어지는 이벤트와 크로스오버 시리즈들, 3)자꾸만 이루어지는 대결 구도의 이야기들, 4)마케팅의 부재, 5)DC의 리버스 출간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마블은 엉뚱하게도 다양성을 이유로 들고 있지요. 트럼프 시대에 걸맞은 핑계인 것도 같군요.

사실 <시크릿 워즈> 자체도 논란이 많은 작품이었고, 타이 인이 엄청나게 많아서 심한 피로감을 주었는데 말이에요. 도대체 그 놈의 <시크릿 워즈>를 왜 하고 싶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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