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 Vol.1&Vol.2

국내에 마블과 DC 코믹스를 독점으로 번역 출간하는 시공그래픽노블이 그 다음으로 선택한 출판사가 이미지 코믹스, 그리고 그 첫 작품으로 들고 나온 것이 <사가>이다. 사가는 출간되자마자 매진을 기록하고 여러 어워드에서 수상하거나 후보에 오르는 등의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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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의 평가는 이렇다. “스타워즈+왕좌의 게임+반지의 제왕+로미오와 줄리엣”

우주의 두 행성 간에 벌어진 전쟁 속에서 적대관계인 뿔족의 남자 군인포로와 날개족의 여자 군인이 사랑에 빠져 도주, 그 와중에 출산한 아기 헤이즐을 지키기 위한 모험극이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군대와 프리랜서 청부살인업자들…

미국인들은 스페이스 오페라를 어지간히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좋은 점: 주관적이지만, 이 시리즈의 좋은 점을 몇 가지 꼽자면 먼저 훌륭한 작가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광활한 스토리를 창작한 스토리작가 브라이언 K. 본은 마블, DC, 다크 호스, 이미지 등등을 가리지 않고 <Y: 더 라스트 맨>, <런어웨이즈>, <엑스 마키나>, <닥터 스트레인지: 서약> 등의 인기작들을 써냈으며, 미드 <로스트>의 극본을 쓰기도 했다. 어느 정도 믿고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스토리면에서는 여러 행성, 종족, 생명체들이 등장하는데도 복잡하지가 않다. 스페이스 오페라라면 꽉 짜인 세밀한 설정이 흘러 넘쳐 보는 사람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작품은 오로지 주인공들의 쫓고 쫓기는 부분에만 집중하다 보니, 그런 면이 없이 편하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지구(정확히 말하면 영어권)의 문화 같은 것이 많이 반영되고 있기도 하다. 복잡한 과학장치를 이해할 필요도 없고, 제국의 구조를 알 필요도 없다. 오히려 좀 가벼운 것 아닌가 싶기도 할 정도이다. 이렇게 크게 집중하지 않고 보다가도, 가끔씩 감춰졌던 설정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뭔가 맞아 떨어지는 희열을 느끼게도 해준다. 시작부분보다도 뒤로 갈수록 더 흥미롭게 되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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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주공간이 배경이라서 가능한 다채로운 설정들, 거대나무 그 자체로 하나의 로켓이라거나 하는 상상 못한 재미있는 설정과 (이젠 흔한 일이지만)마법과 과학이 공존하는 데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 판타지와 SF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유령이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이니까. 또한, 아주 독특하게도 할리퀸 로맨스 같은 상업적 로맨스 소설이 주인공과 관련해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런 독특함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등장인물은 헤이즐 가족보다도 유령소녀나 로봇왕자, 거짓말고양이 등이 더 끌리기도 하는데, 순전히 주관적 취향이다. 아, 아기 헤이즐이 어떻게 자랄지 무척 기대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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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점: 이제 공정하게 좋지 않은 점을 나열해보자. 책을 몇 페이지 넘긴 순간 예상 못한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거 왜 19세가 아니지?

성적인 묘사와 욕설 및 비속어들. 음… 보기에 따라 이런 면이 좋은 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꺼려지는 부분이다. 욕설을 많이 섞어 쓰는 우리 현실을 보면 사실 이런 부분이 현실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극도로 혐오하는 개인 입장에서는 이런 단어나 어휘를 활자로 본다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물론, 심의에서 관대하게 통과되는 머리 터지고 잘리는 이런 묘사도 많은 편이다. 아니, 대체 왜 19세가 아닌거야 이 작품…

앞서 말한 대로 <스타워즈>나 <은하영웅전설>처럼 치밀한 설정에 옭아 매여 있지 않으므로, 그쪽 취향에서 보기엔 매우 허술하거나 엉성하다고 느낄 것 같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숨겨진 설정들이 나타나고 표현되면서 더 깊어질 것 같긴 한데, 이 두 권만으로는 무리이다. 주인공인 헤이즐의 아빠엄마에 대해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

그림은 피오나 스테이플스가 맡았는데, 나름 꽤 예쁘기도 하고 다수가 좋아할 스타일이다. 다만, 만화적으로 과장된 표현이나 화려하고 복잡한 배경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배경은 일부러 최대한 단순하게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뜩이나 가볍고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에 그림마저 같은 결로 가니 좀 아쉬워 보일 수가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2권까지의 감상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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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 익히 들어왔던 평가 때문인지 1권은 좀 실망하면서 읽었다면, 2권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뭔가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물론 또 이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겠지).
지금 미국에서는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난리인 모양이다. 이것이 과연 미국인들만이 좋아할 이야기로 끝날지 결국엔 세계인들의 취향에 맞아 떨어지게 될지는 기다려봐야 알 일이고, 원작으로 먼저 살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내가 뒷부분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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